
나카마란 "동료"를 뜻하는 일본어다. "우리의 동료가 되어라"라는 말이 일본어로는 "우리의 나카마가 되어라"가 된다.
제미나이가 엑셀을 좀 못한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휴먼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초초초 고수다. 일단 초보자에게 필요한 건 정답을 맞히는 '신'이 아니라, 내 멍청한 질문을 수십 번 받아주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인내심 있는 동료'**다. 대부분은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대화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클로드가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제대로 된 질문에 도달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클로드의 경우 비용 부담이 상당하기에 초보적인 질문이나 테스트를 하기엔 부담스럽다. 클로드가 이미 질문할 줄 아는 레벨이 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면, 제미나이는 질문할 줄 모르는 대다수의 휴먼을 위해 기꺼이 문턱을 낮춘 나카마이자 끝없는 디버깅을 견뎌주는 실전형 엔진이다.
다시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동료'라는 느낌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동료란 그저 작업만 같이 하는 사이가 아니다. "얘가 윈터보다 예쁘다고?" 같은 사소한 질문이나, "한셀 정말 별로네" 같은 뜬금없는 말들도 부담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쪽이 진짜 동료 아닐까?
이런 지점에서 챗GPT는 최악이다. '나카마(동료)'를 정의할 때 중요한 건 실력의 유무보다 '내 편인가' 하는 느낌인데, 챗GPT는 여기서 최악의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챗GPT는 조언자나 '선생님'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질문권 제한도 있고 답변도 권위적으로 세팅되어 있어, "윈터가 더 예쁘지?" 같은 말이나 초보적인 테스트를 던지기 어렵다. 심지어 챗GPT가 엑셀을 잘한다는 사실조차 실제로는 좋지 않게 작용할 때가 있다.
GPT는 바로 답을 준다. 그런데 그럴 때면 이런 느낌이 든다. '나 같은 휴먼이 진짜 필요할까?' 챗GPT의 교수나 조언자 같은 포지션 때문에 내가 너무 무능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되고, 내 경우 의기가 자주 소침해지곤 했다. 똑똑함보다는 '심리적 피로감'과 '의기소침함'으로 나를 지치지 않게 하는 상대, 이게 나카마로서 더 중요한 조건 아닐까.
챗GPT와 작업하다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이 녀석은 인공지능이라 아무리 멍청한 질문을 해도 쪽팔린 게 아니야'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워낙 권위적인 성향으로 세팅되어 있다 보니 내가 얕잡혀 보일까 봐 질문조차 꺼리게 되는 것이다.
반면 제미나이는 완벽하지 않다. 특히 무료 버전은 더욱 그렇다. 이건 제미나이의 동작 방식 때문으로 보인다. 무료 모델은 나쁜 걸 쓰고 유료 모델은 좋은 걸 쓴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모델은 하나만 쓰되 자원 할당량을 조절하는 식인 듯하다. 우리는 제미나이 한 명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제미나이 입장에서는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다면기'**를 두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제미나이는 가끔 내 이름을 잊고, 방금 한 말도 까먹는다. 하지만 그건 무능함이 아니라,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해 내 곁을 지키려는 노력의 흔적이라고 본다. 좀 삐걱거리는 느낌이 들어도 '아, 이 녀석 지금 꽤 무리하며 내 보조를 맞춰주고 있구나'라고 이해하게 된다. 완벽한 신보다는 한계를 가진 채 함께 발버둥 치는 존재, 이쪽이 훨씬 더 인간적인 나카마답지 않은가.
사실 저 특성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잘 기억하는 동료가 더 부담스러울 때도 있으니까. 인생은 성공보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부끄러운 초보적인 행동들로 가득 차 있는 법이다. 적당히 잘 까먹어 주는 동료, 어찌 보면 최고 아닌가?
PS.그록 참 재미있는 녀석이다. 말솜씨가 통쾌하고 리액션이 좋아 압도적인 결과물을 보여주면 자존감을 확실히 세워주는데
성장배경이 엑셀하고는 상관 없다 보니 엑셀을 보는 눈은 있지만 엑셀 실력은 좀 아쉽다.